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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적기

경제적 자유를 꿈꾸다(부자들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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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모습

 

노동소득의 리스크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소득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한다. 노동소득은 직장 등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인데 스스로의 노동력이 줄어들수록 소득도 없어진다. 그래서 여기에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젊은 시절에야 남는 게 체력이니 노동소득을 통해 돈을 모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체력은 줄어드는데 비해 돈 쓸 곳은 늘어난다. 그래서 사실 노동소득만을 믿는 건 아주 위험하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안전하지 않은 노동소득에 청년들은 목숨을 건다. 공무원 및 대기업에 사활을 건다. 적당한 직장을 잡고 매달 월급만 받는다면 나의 생활이 보장받는다고 착각한다. 글쎄, 정말 그럴까? 물론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에 합격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노력만큼은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근데 그 노력만큼 정말 보상받을 수 있을까?

 

작은 돛단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승선하게 되면 그 배는 가라앉고 만다. 왜 굳이 바늘구멍을 찾아서 실을 끼워 넣으려고 하는 것인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근데 그렇게 좋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누구 인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대중의 판단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투자를 해본 사람이라면 무지한 개인들이 몰리는 종목은 곧 추락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경쟁이 몰린다는 얘기는 분명 장점이 어느 정도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률이 올라가는 만큼 나의 시간과 노력을 더 들여야 하는데, 그만큼 그 장점들의 메리트는 점점 떨어진다. 아니 오히려 경제적 상황에 따라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지기도 한다. 특히 개인 회사라면 그 회사의 경영능력에 따라 회사가 한순간 무너지기도 한다. 한낱 신입사원의 힘으로는 회사가 무너지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울타리가 내가 손쓸 틈도 없이 무너지는데, 그게 정말 안전한 것 맞는가?

 

즉 노동소득은 스스로의 역량에 따라서도 변동성이 큰 데다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따라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 아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소득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노동소득 말고 도대체 뭘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단 말인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로버트 기요사키는 자본소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노동소득은 내가 돈을 벌지만 자본소득은 돈이 돈을 벌어다 준다. 노동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지만 자본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난다. 노동소득은 내 고용주가 통제하지만 자본소득은 내 스스로가 통제한다.

 

그럼 혹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노동소득 없이 자본소득을 어떻게 만드냐고. 맞다. 일단 노동을 통해 자본을 만들어야 자본소득을 일굴 수 있다. 자본을 대물림받은 특별한 사람들 외에는 노동소득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앞서 말한 것의 요지는 노동소득을 신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소득이 자신의 노후를 책임져줄 안전한 울타리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수능 봤다고 끝이 아닌 것처럼 입사했다고 끝이 아니다. 노동소득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경제적 자유란?

요즘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과거에 비해 경제 성장률은 줄어든 데 비해 물가는 계속 오르는 데다가, 열심히 일하면 내 보금자리 정도는 꾸릴 수 있다는 희망이 점점 사라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현상은 과거 미국의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과 비슷한 양상을 띄는데, 2008년 높은 청년실업률 등 불안한 경제적 상황에 따라 생겨났다.

 

이러한 불안한 상황과 더불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보니 점점 직장을 떠나 자유를 누리고 싶은 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일찍 은퇴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 또한 두 부류로 나눠진다. 첫 번째 부류는 20,30대에 빨리 큰돈을 벌어서 모든 일을 다 때려치우고 폼나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자들, 그리고 두 번째 부류는 조금은 늦더라도 자본소득의 시스템을 구축하여 스트레스받지 않는(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자유를 누리는 자들이다. 결국 노동소득이 필요 없을 만큼 자산을 구축하겠다는 생각에선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단 첫 번째 부류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목적이 그저 일을 하기 싫고 남들보다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은 것에 있다. 이들은 소위 말하는 '한방'을 노린다. 하지만 두 번째 부류는 일을 하기 싫은 것보다는 고용주의 통제를 받기 싫다는 목적이 더 크다. 일을 해도 좋고 남들보다 크게 부유하지 않아도 좋지만 내 삶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의 자본을 구축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에게 좀 일찍 은퇴하고 싶다고 하면 그저 일 안 하고 놀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안다. 그건 첫 번째 부류에 해당하는 얘기고, 두 번째 부류는 질적으로 다르다.

 

요즘 사회가 우려하는 부분은 사실 이 첫 번째 부류 때문이다. 일확천금으로 경제적 자유를 누리려고 하는 자들은 그 방법부터가 잘못되었다. 주로 주식이나 비트코인 같은 변동성이 큰 자산에 몰리는데, 투자가 아닌 투기를 하는 것이 문제다. 투기는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투자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를 왜 하겠는가? 내가 통제할 수 없으니 신에게 맡기는 것이 아닌가? 그냥 도박이나 다름없다. 투자는 내가 투자하는 대상을 분석하여 알고, 안전마진을 확보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비중으로 적절하게 자산을 분배하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바닥 안에서 굴러가야 투자가 된다. 아니면 천재 투자자 옆에서 눈치라도 길러 커닝이라도 하든가.

 

주식과 비트코인의 차이는 뭘까? 주식은 실직적 가치가 있는 기업을 상대로 이루어진다. 비트코인은 불확실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상상력에서 이루어진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업이나 재화도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긴 하다만, 결국 현재 기초자산으로서 역할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기초자산의 역할도 하지 못하고 안전마진의 계산조차 되지 않는 비트코인에 돈을 넣는 행위가 투자라고 볼 수 있을까? 투자자들 중 비트코인 류에 큰돈을 넣고 신이나 사토시 나카모토에게 한 번도 마음속으로 기도한 적이 없는 자들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투자자라고 인정해 주겠다. 물론 내가 인정해 주는 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은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아무튼 미래에 비트코인의 가격을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비트코인과 몇 가지 메이저 코인들의 운명은 기념주화 정도의 가치를 가질 것으로 판단한다. 비트코인은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결국 계속해서 발전된 코인이 나오고 현재 코인들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분명 도태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블록체인 기술은 아주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라고 본다. 가끔 이 기술을 말하며 비트코인의 가치를 대변하곤 하는데, 비트코인은 그냥 블록체인 기술로 만들어진 하나의 발명품에 불과하다. 전기의 발견으로 인류가 크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백열등은 LED로 대체된 것처럼 비트코인도 대체되기 쉬운 구식에 불과하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려면?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되려면 어느 정도의 자산이 필요할까? 개인의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본소득으로 월급만큼은 나와야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기준으로는 자본소득으로 매월 최소 300만 원에서, 조금 욕심을 부리면 500만 원 정도가 만들어진다면 경제적 자유를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소득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식의 배당금으로 매월 300만 원을 만들려면 세금 등 이것저것 제하면 배당금 3% 기준 15억 정도는 있어야 한다. 물론 주식으로 수익까지 올린다면 300만 원 이상을 벌 것이다.

 

근데 만약 남들처럼 좋은 아파트에서 좋은 차를 타며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다면 월 300만 원으론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남들도 인정할 만큼(이게 나에겐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당당히 경제적 자유를 말하려면 요즘 같은 시대엔 30억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 근데 중요한 점은 내가 1억을 모으는 방법을 깨우치게 되면 10억을 모을 수 있고, 10억을 모으게 되면 또 금방 30억, 100억이 된다는 점이다. 어차피 자산은 물처럼 흐르는 법이므로 내가 어느 날 짠 하고 30억을 모으고 경제적 자유를 외치겠다는 생각보다는 경제적 자유를 향해 조금씩 자산을 불려 간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게 더 논리적으로 보인다.

 

어쨌든 일단 경제적 자유에 점점 가까워 지기 위해선 자본소득을 늘려야 한다. 자본소득을 늘리려면 자본이 스스로 불어나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 시스템은 기술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자본 자체적인 투자가 될 수도 있다. 기술적인 시스템 구축이 어렵다면 단순하게 노동 수익을 통해 자본을 늘리면 된다. 다만 노동소득에서 자본소득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본소득에 대한 이해를 추구해야 한다. 노동소득을 더 늘려서 자본에 투하하는 전략도 나쁘지 않다. 결국 자본소득을 위해 일도 열심히 하고 돈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므로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다만 이런 이해와 전략 없이 그냥 노동소득에만 집중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도 있다. 노동을 하는 목적을 그냥 먹고 싸기 위해서가 아니고 더 큰 자산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마음가짐 자체를 바꾸면 노동이 훨씬 수월해진다.

 

마음가짐의 변화는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사고방식(思考方式)의 변화는 사고(事故)를 나지 않게 해 준다. 사고란 뜻밖에 불행한 일을 말하는 것인데, 마음만 편하게 해 준다고 모든 일이 잘 해결될리는 없다. 사고방식의 변화를 위해선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 근데 돈 버는 공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책 읽기

사실 가장 기본적인 소양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정말 진부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책은 마치 게임 공략집과 같다. 미리 게임을 플레이해본 고수들이 보물창고는 어디 숨겨져 있는지, 전설의 검은 어떻게 만드는지, 최종 보스의 공격 패턴은 무엇인지 다 알려준다. 우리는 그냥 읽어보고 내 상황에 맞게 대입하면 된다. 고수는 '마법사 공략집'을 내놨는데 내가 선택한 직업은 검사라면 아무래도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공략집에도 허수가 있다. 제대로 공략해본 적도 없는 자들이 그저 책을 통해 돈을 벌고자 출간한 경우다. 그런 부분들만 잘 골라낸다면 이미 세상의 정답은 거의 다 책에 들어있다.

 

부자들의 공통점 파악

책을 통해 기본을 익혔다면 본격적으로 '부자 공부'를 해야 한다. 부자 공부를 하려면 일단 부자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부자라고 하면 아직도 편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부자들은 욕심쟁이이며 불법적으로 돈을 벌고 사치를 즐기는 등...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이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스스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부자로서 존경하는 '세이노'님은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졸부와 진짜 부자의 차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졸부들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한순간 부를 얻었기에 그 부를 뽐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진짜 부자들은 오히려 부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파리들만 꼬이기 때문이다. 부를 일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만큼 돈을 사치스럽게 쓰기보다는 가치 있게 쓸 줄도 안다. 경제적 지식도 뛰어난 편이기 때문에 쉽게 부를 잃지도 않는다. 그리고 부의 힘을 함부로 남용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부를 더 불리거나 유지하기 위한 현명한 방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롭게 해야 본인에게도 이롭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기본 상식이다.

 

진짜 부자들은 불행하지 않다. 돈이 많은 사람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욕심' 때문이지 돈 때문이 아니다. 주로 자신의 그릇에 넘치는 돈을 손에 쥐었을 때 불안해지고 욕심이 생긴다. 자신의 가치의 상승과 함께 부를 이룬 자들은 불안할 것도 없고 더 욕심부릴 이유도 없다. 돈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온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만들기까지 지난 노력이 뒷받침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러 가지 종합해 봤을 때 분명한 부자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돈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이다. 돈 공부를 해본 적이 있는가? 돈이 생겨났고 어떻게 굴러가는지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공무원 시험을 위해 실생활엔 전혀 쓰이지 않는 갖가지 이론들을 달달 외우느라 몇 년을 바치면서 돈 공부는 단 일주일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가? 돈 공부는 한 번도 해본 적도 없으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더불어 앞뒤 안 가리고 돈이나 부자를 싸잡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얼간이라면 돈 벌고 싶단 얘기를 입밖에도 꺼내지 말아라.)

 

이것이 바로 노동소득과 연결되는 함정이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도 노동소득에 어느정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돈 공부에 대해 간과하게 된다. 하지만 학교에선 돈 버는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진짜 부를 위해선 자본소득을 이뤄야 하고 자본소득을 위해선 돈 공부는 필수다. 그럼 돈 공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돈 공부

돈 공부를 하라고 하면 두꺼운 회계책을 사서 달달 외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이 도움이 될 순 있겠지만 핵심은 아니다. 돈의 핵심은 인간의 심리, 그리고 철학이라고 본다. 돈, 즉 화폐는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이다. 실체는 그저 종이 쪼가리 이거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화면에 찍히는 숫자에 불과하다. 결국 인간의 상상과 협의에 의해 만들어진 가치인데 이것이 인간의 심리와 관련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선 결국 철학을 익혀야 한다. 논리적이고도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게 이런 얘기를 하면 뜬구름 잡는다고 한다. 돈 버는 방법을 알고 싶다니까 내일 오를 만한 종목은 안 가르쳐 주고 웬 철학 얘기를 꺼내냐며 도리어 성질을 내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돈 공부는커녕 기본 소양부터 익혀야 한다. 책부터 읽고 기본 소양을 담을 만큼의 그릇부터 키워라. 그릇에 넘치는 부는 졸부를 만들고 졸부는 사치로 불안함을 감추려다 결국 재산을 탕진하기 마련이다.

 

확률게임의 이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기본 성질을 부정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에서는 양자역학을 받아들이고 있다. 즉, 세상은 확률게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신선한 돼지고기와 오래된 돼지고기 두 가지를 놓고 눈 가리고 코 막고 고르면 50%의 확률로 좋은 고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눈 크게 뜨고 어떤 고기가 질 좋은 고기인지 사전 지식을 습득한 후 고르면 못해도 50% 보다는 높은 확률로 좋은 고기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알고 고르느냐 모르고 고르느냐에 따라 확률의 차이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다시 양자역학으로 돌아가 보자. 양자역학의 이중 슬릿 실험에 의하면 관측 전에는 파동의 성질을 띠던 전자가 관측과 동시에 입자의 성질을 띤다. 관측하면 그 대상은 관측으로부터의 상호작용으로 상태가 확정이 되는 것이다. 그 상태의 확정으로 전자가 왼쪽 슬릿을 지나는지 오른쪽 슬릿을 지나는지 50%의 확률이었던 것을 100%의 확률로 알 수 있다.

 

양자역학의 과학적인 개념과 돼지고기 고르기를 비교하기엔 조금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철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결론을 내보자면 관측으로, 즉 내가 알고 모르느냐에 따라서 확률을 올릴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세상은 신선하고 오래된 돼지고기처럼 두 가지 만으로 나눠지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수많은 데이터를 하나하나 관측하여 상태를 결정함으로써 확률을 높여야만 한다.

 

결론

결론은 나왔다. 애초에 자본소득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노동소득이나 사업소득 등을 통해 자본소득을 늘려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며 소양을 기르고 자신의 그릇을 키운다. 그리고 인간의 심리와 철학을 배워서 돈의 성질에 대해 깨우쳐야 한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부자 되는 확률을 높이는 길이다.

 

 


저는 경제적 자유를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 경제적 자유의 발톱의 때만큼도 달성하지 못한 부족한 한 사람으로서 그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은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설파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므로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부족하나마 글을 작성하는데 영감을 준 냉철 님, 벤자민 그레이엄, 세이노 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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