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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홍콩턱돌이의 육아일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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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0일 월요일 (생후 51일)


신생아 백신


지난번엔 아내와 장모님이 아림이를 데리고 집 앞 클리닉에 가서 필수 백신을 맞췄고, 오늘은 추가적인 백신을 맞기로 했다. 필수 백신은 무료로 맞을 수 있지만 추가로 선택적 백신을 맞기 위해서 믿을 만한 클리닉과 상품을 선별하고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선택 백신은 종류가 상당히 많은데 마음 같아선 모든 종류를 다 접종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꼭 필요해 보이는 상품을 골랐다. 상품 내용이 한자로 되어있어서 나름대로 번역을 해보기도 했는데, B형 감염이나 뇌수막염 등 여러 종류로 구성되어 있었다. 번역 자체가 난해하기도 하고 대부분은 들어본 적도 없는 병에 대한 백신이라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이름을 정확히 알아도 해당 백신을 꼭 맞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선뜻 답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름대로 의논을 해봤지만 결론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맞는 '적당한' 백신을 고르게 됐다.

 

홍콩 클리닉 백신상품

 

침사추이(Tsim Sha Tsui)에 있는 클리닉에 오후 2시 30분에 예약을 하고 준비를 했다. 집에서 클리닉까지 꽤 먼거리다. Light Rail을 타고 MTR로 갈아타고 가야 하는데 아림이를 데리고 MTR을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항상 택시를 탔는데 매번 택시를 탈 순 없고, 아림이도 이제 좀 자랐으니 대중교통을 경험해볼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도 연차를 쓰고 함께 백신 접종에 나선 것이다. 나름 큰 도전이었다. 우리는 집에서 나서기 전 아림이를 충분히 먹이고 잠에 들면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최근에 점점 낮에 잠을 안 자고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 배가 충분히 부르게 먹었지만 잠에 들지 않고 멀뚱멀뚱한 정신으로 팔다리를 쭉쭉 펴며 옹알이를 해댔다.

 

나가야 하는 시간이 다 되었기에 일단 유모차에 태워 출발을 하니 그에 맞춰 울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것도 아니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것도 아닌데 울고 보챌 때면 난감하다. 이미 트림도 시원하게 했다. 결국 MTR을 타고 가는 내내 울어서 안아주기도 했다가 잠시 중간역에 내려서 달래기도 하며 겨우 클리닉에 도착했다.

 

클리닉에 도착하니 이제는 진짜 배가고파 울기 시작했다. 근데 백신 접종 30분 전에는 뭘 먹이지 말라고 해서 분유를 먹이지 않았다. 근데 백신 접종 대기시간이 꽤 길어졌다. 안 그래도 배고픈 아림이는 대기하는 동안 계속 울어댔다.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기를 마치고 겨우 차례가 와서 백신을 맞았다. 먹는 백신과 주사 백신을 맞았는데, 주사는 허벅지에 아주 긴 주삿바늘을 사용했다. 그 긴 바늘이 짧고 통통한 아림이 허벅지에 쑥 들어갔다 나오자마자 아림이 얼굴이 벌게지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더 슬픈 사실은 백신 맞은 후 30분 동안 또 먹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30분동안 아림이를 이리저리 달래며 겨우 진정시켰다. 시간이 되는데 맞춰 바로 분유를 만들어 먹이니 아림이는 아주 게걸스럽게 분유를 들이켰다. 오래 참았다 아림아. 네 삶의 처음, 바깥세상의 신비로움과 긴 주삿바늘의 고통, 그리고 배고픔의 아픔을 이겨낸 순간 이리라. 오늘의 고통이 앞으로 네 삶의 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아마 아림이에게도 정신없이 피곤한 하루였겠지만 아내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중간에 아내가 엘리베이터를 제대로 잡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질을 내버렸는데, 별로 큰 일도 아닌데 성질을 낸 것에 대해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내는 내가 그 순간 화가 나서 아이를 바닥에 던져버릴까 봐 걱정되었다고 했다. 내가 아내에게 준 믿음이 그 정도밖에 안되었다니.. 반성해야겠다.

 

어쨌든 그렇게 집에와서 저녁을 먹고 아림이 목욕시키고 나니 하루가 다 갔다. 아림이가 백신을 잘 이겨내고 항체를 잘 생성하여 튼튼하고 면역력 있는 아이로 잘 성장하길 바란다.

 

 

 

첫 번째 도약


 

아림이는 최근 낮잠이 줄기도 했고 여러 행동에도 조금의 변화가 있었다.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라는 아이 발달에 관련된 책을 보면 '도약'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갑자기 아이가 엄마 품을 더 찾는다거나, 말을 안 듣는다거나 하는 등의 상황에 대해 아이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이런 아이의 행동을 '문제'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는 각 시기에 따라 도약을 하는데 이 도약이라는 것은 아이의 두뇌 성장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아이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면서 보고 느끼는 것에 큰 변화를 느끼고 그러한 새로움에 대해 불안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이가 불안하니 엄마를 더 찾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할 때면 아이에게 무슨 병이나 문제가 생겼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고 각 상황에 따라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가 덜 불안할 수 있도록 대처하면 된다.

 

상기 책에 의하면 첫 번째 도약은 5주차 정도에 시작된다고 한다. 아림이는 2주 빨리 태어났기 때문에 예정일 기준으로는 이제 5주 차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 주가 첫 번째 도약의 시기가 맞다. 첫 번째 도약은 처음으로 낯선 세상에 대해 혼란을 느끼는 것이다. 내 존재나 다른 존재에 대해 조금씩 자각하기 시작하며 느끼는 어려움이다. 어른도 낯선 곳에 가면 불안한 감정을 느끼기 마련인데 하물며 신생아는 얼마나 큰 자극이겠는가.

 

아림이는 최근 약간의 상호작용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첫 번째 도약에 따른 변화인 것으로 추측된다. 예전에는 배고프다고 울기 시작하면 본인 입에 젖꼭지가 물리기 전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는데 이제는 분유를 만들어서 아림의 시야에 비춰주면 울음을 그치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예전엔 배고프거나 하는 등의 내적인 불편함에 대해 울음을 터뜨렸다면, 이제는 주위에 엄마나 아빠와 같은 어떤 존재가 없다는 불안감에도 울기 시작한다. 분명 신생아로서는 큰 도약임에 틀림없다.

 

백신을 맞으러 가는 길에도 여러가지 빛과 하늘, 나무를 뚫어져라 보며 새로운 사물에 대해 배웠다. 이렇게 새로운 것들 투성인 세상에 아림이는 잠에 들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낯선 세상에 의지할 것은 엄마나 아빠의 품 밖에는 없는 것이다.

 

도약의 시기는 엄마나 아빠도 힘들겠지만 무엇보다도 힘든건 아이일 것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나면 부모로서도 조금 도움이 된다. 우리 아이에게 생긴 변화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의 한 단계 성장이며 축복인 것이다. 인생은 항상 어려운 시기가 있으면 좋은 시기도 온다. 이 불변의 진리가 이미 태어난 지 한 달 남짓한 신생아부터 적용된다. 자연의 법칙의 신비로움은 알면 알수록 경이롭고 아름답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아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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