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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홍콩턱돌이의 육아일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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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31일 수요일 (생후 11일)


산모를 향한 남편의 자세


아내가 회복하는 동안은 새벽육아는 도맡아 하겠다고 자신있게 얘기했지만 벌써 포기하고 싶어졌다. 전체적인 수면시간이 2~3 정도 줄어드는 것은 견딜만 했지만 새벽에 아이의 울음소리에 깨는 것은 꽤 힘겨운 일이다. 칭얼 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눈을 감은 채, 제발 아림이가 조금만 더 있다가 깨길 간절히 기도한다. 하지만 여지없이 빽- 우는 아이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나야 한다.

 

잠의 달콤함을 줄여가며 아림이를 돌보는게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잘 먹고 황금색의 변을 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포동포동 예뻐지는 아림이를 보고 있으면 나름 보람이 있다. 아빠로서 아직은 부족하지만 아림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난다.

 

아내가 출산 시 생긴 회음부 절개 부위 통증이 줄어 들질 않아 병원에 방문 하기로 했다. 아내가 QE에 일단 전화해서 물어보니 원래 어느정도 통증은 계속 될 수 있고 큰 문제는 아니라며 정 검사받고 싶으면 오전 9시 일찍 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QE는 너무 멀어 일단 문제가 있는지, 간단하게 치료라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집 근저 클리닉에 들렸다. 클리닉에서 확인 해보니 약간 고름이 보여 치료를 받는게 낫다며 Tin Shui 병원으로 가라고 Reference Letter를 써주었다.

 

Tin Shiu 병원으로 가서 몇 시간을 기다려 겨우 검사를 다시 받으니 염증이 약간 있어서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데 여기선 치료가 안된단다. 애초에 치료를 해주지도 않으면서 여기저기 돌아가며 검사만 하게 하고 시간 낭비만 하게 되어 아내가 여러모로 짜증이 많이 났다. 게다가 상처 부위를 검사 할 때마다 보여줘야 하는데 의사가 남자인 경우도 있고 하니 아무리 검사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여성으로서 수치심도 들었을 것 같다.

 

아무튼 결국엔 내일 아침 QE로 가서 제대로 검사를 받아 보라는 결론이 났다. QE는 멀어서 대중교통을 타고 가기엔 아직 힘이 드니 택시를 타야 하는데 택시비가 왕복 HKD 500정도라 아내는 돈이 아깝다며 불평했다. 여기서 나는 순간 판단력을 잃었다. 그깟 돈 얼마나 한다고 몸이 더 중요하니 택시를 타라고 했어야 했다. 택시비를 쥐어주며 돈 걱정 말고 치료 하는데 집중하라고 했어야 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방심하던 차에 마음 속 진심이 나와 버렸다. 택시비가 그렇게 아까우면 그냥 버스타고 갔다오면 어때?라는 말을 내 뱉은 입을 원망해봐야 이미 늦은 뒤 였다. 아내는 집에 돌아와 아무도 본인 몸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다며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나는 뒤늦게 서야 눈물을 흘리는 아내 머리맡에 HKD 500을 놓아 두고 아내의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 울다보니 기분이 풀렸는지 울음을 그치고 금방 싱글벙글 돌아다녔다. 택시비 고맙다며 택시 타고 잘 갔다 오겠단다. 아내의 기분이 풀려서 다행이지만 역시 택시비가 아까운건 거부할 수 없는 팩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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