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6일 금요일 (생후 6일)
복통의 마무리 단계
복통은 오히려 심해졌지만 직감적으로 장속에 있는 박테리아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배출되지 않고 고통만 안겨주던 장속의 소화된 찌꺼기들이 이제서야 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쏟아내는 것도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박테리아들이 내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지 한결 편안했다. 그나저나 아림이의 육아일기를 적는 공간에 육아보다 복통과의 사투를 더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민망한 기분이 든다.
서툴러서 죄송합니다
아내의 몸조리를 위해 장모님이 우리집에 머물며 끼니 등을 챙겨주시기로 했다. 장모님과 나는 의사소통이 어렵지만(내 광동어 실력이 부족한 탓에) 그래도 어찌저찌 손짓발짓을 동원하면 같이 생활하는데 평소에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일상 생활이 아닌 상황에서는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오늘은 아림이의 기본적인 신체검사 및 아이 양육에 관련한 인터뷰, 그리고 황달수치 등을 점검하기 위해 Clinic에 가는 날이었다. 아내는 몸조리를 위해 집에서 쉬는게 낫다고 판단하여 장모님과 내가 아림이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클리닉에 도착하여 접수를 하고 대기를 하는데 장모님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나도 그런 상황에 대해 답해야 하는 데다가 아이까지 울며 보채기 시작하니 정신이 없었다. 보채는 아림이에게 서둘러 분유를 타 줬는데 한입 대자마자 바닥에 집어 던져버렸다. 젖병을 두 병밖에 안들고 왔는데 한병은 못쓰게 됐으니, 전쟁터에서 총알이 한 발 남았을 때도 이런 기분일까? 이런 상황이다 보니 체중검사를 하러 들어가는데 유모차를 가지고 들어가면 안된다는 문구를 못보고 그냥 들어갔다가 직원한테 혼났다.
홍콩사람들은 처음부터 나에게 영어를 써주지 않는다. 내 모습이 동양인이기 때문에 외국인이라고 판단하지 않으니 내가 영어를 써달라고 부탁하면 그제서야 영어로 소통을 하게된다. 근데 매 순간마다 영어를 써달라고 할 순 없으니 못 알아 들어도 대략 눈치로 판단하고 행동하는데 가끔 어리바리 타는 경우가 있다. 체중검사를 하러 들어가서 아이의 옷을 모두 벗기라고 했는데 내가 못알아 듣고는 그냥 옷을 입힌 채로 아림이를 내려놓으니 장모님이 답답하다며 핀잔을 주셨다. 이래저래 허둥지둥 하는 모습이 아빠로서 못미덥게 비쳐진것 같아서 좀 씁쓸했다.
외국인으로서, 그리고 초보 아빠로서 아이의 신체검사 같은 간단한 일도 만만치 않다. 이래저래 서툴지만 검사를 마치고 나니 아내가 보고싶어졌다. 의사도 다음에는 아내와 동행하여 육아에 관련된 사항을 더 자세히 얘기하자고 제안했다.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의사의 제안에 따라 다음엔 아내와 꼭 동행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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