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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홍콩턱돌이의 육아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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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0일 토요일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미안함


드디어 출산의 아침이 밝았다. 서둘러 준비를 마친 뒤 병원으로 출발하려던 찰나, 병원 관계자에게서 점심 이후에나 천천히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오전 9시 아내의 상황은 Room B4(분만실/Labor Room)으로 옮겨 양수를 터뜨린 후 대기 중이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출산 준비가 완료되려면 아림이가 나올 수 있을 만큼 아내의 자궁이 충분히 열려야 하는데 그 시간이 특히 초산인 경우는 꽤 오래 걸린다고 한다. 여차하면 하루도 꼬박 넘길 수도 있는지라 굳이 남편이 빨리 와서 대기할 필요는 없다는 병원의 설명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철저하게 병원의 출입을 통제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한번 분만실로 들어가면 식사는 커녕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병원 직원의 동행이 필요하여 오히려 남편이 일찍 와 있는 것이 도움이 안 되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이었다. 아내의 옆에서 긴 시간을 지켜주려면 나 또한 스스로 정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동의했고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은 접어두고 하루를 굶어도 배 고프지 않을 만큼 점심을 두둑이 챙겨 먹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아내는 10시 40분경 유도분만을 위해 자궁 수축제를 투여받아 조금씩 진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한 오후 1시쯤, 아내의 얼굴을 보니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팔에는 주사를 꼽고 수척해진 모습에 남편으로서 이 순간만큼은 해 줄수 없는 게 딱히 없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는 아림이가 탄생하면 아림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으로서 감성적인 마음은 동여매고 일단 아내의 옆에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장했다.

 

 

진통의 시간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음성 결과를 보여주지 않으면 분만실 자체에 출입이 안되는 상황이었으나, 평생 두 번 다시 있을지도 모르는 출산의 현장을 남편으로서 옆자리를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검사는 3일 간만 유효하기에 출산 전까지 검사를 받고 이틀 뒤 다시 검사를 받는 방식으로 유효기간을 지켜가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 유효기간이 갱신된 따끈한 음성 결과를 가지고 분만실에 입장할 수 있었다.

 

분만실에 도착한 뒤 한동안은 아내의 진통이 심하지 않아 정말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 새워 대기할 생각으로 당시 읽고 있던 '사피엔스'를 들고 갔지만 막상 책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아내의 진통이 천천히 시작되었다. 아내가 진통으로 아파하자 책 따위는 읽을 정신이 없었다. 출산 시 아내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남편의 자세에 대해 미리 공부해간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아내 옆에서 그저 손이나 다리 등을 주물러 주었다. 사실 이런 행동이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단지 방해만 되지 않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점점 아파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에게 다가가 배 위에 작게 속삭였다. '아림아, 엄마 아프니까 빨리 나와'. 아내는 나중에 말하길 내가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 때 내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싶다고 했다. 역시 그저 아내 옆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남편의 역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출산의 시간


그렇게 안절부절 2-3시간이 지났을까, 자궁문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하더니 금세 충분히 열려 출산 준비에 돌입했다. 물론 아내로서는 굉장히 긴 시간이었겠지만 초산이라 더 오래 걸릴 것도 각오했던 상황에서 의외로 빠르게 분만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병원 관계자들이 여러 명 들어와 출산 시작을 알렸다.

 

아내가 누워있던 침대의 양쪽 받침대를 올려 다리를 올려 놓을 수 있도록 하고 아내의 앞쪽에 봉을 세워 양손으로 붙들고 힘을 줄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아내의 오른편에 서서 왼손으로는 아내의 등을 밀어 힘을 보태고 오른손으론 아내가 봉을 잡은 손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꽉 잡아 주었다. 2-3번 힘을 준 뒤 아내의 힘이 빠지면 다리를 주물러 주어 근육의 긴장을 푸는 것을 도왔다. 그렇게 잠시 쉰 뒤 다시 힘을 주어 아림이를 밀어내는 과정을 수 차례 반복했다. 이때 아내는 고통보다는 힘을 주는 과정이 체력적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몇 차례 힘을 주자 아림이의 까만 머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더욱 박차를 가해 아림이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아림이의 얼굴이 뽕 하고 빠져나왔다. 이때 아림이의 얼굴은 새빨갛고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목이 졸리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간호사가 아림이의 머리를 잡고 이리저리 돌리면서 아슬아슬 잡아 빼니 어깨부터 쑥 하고 아림이의 몸이 빠져나왔다. 드디어 나온 아림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꿈틀꿈틀 움직이며 울기 시작했다. 오후 5시 20분이었다.

 

아림이와의 첫 만남에 눈물이 쏟아지지 않을까 했던 걱정과는 달리 무사히 아이가 태어나고 아내의 진통이 일단락되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어서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내의 상태도 양호했고 아림이도 몸무게 2.81kg로 다소 작지만 건강하게 태어났다. 아림이와 아내가 연결되어 있던 탯줄의 모양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한 모양이었다. 마치 골뱅이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는데 회전축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이 완벽하게 되어 있는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떻게 저런 모양이 아내의 뱃속에서 만들어졌는지 신기했다. 아이의 모습보다 탯줄의 모습에 더 신기함을 느꼈다고 하면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의 모습은 예상했던 대로지만 탯줄의 모습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쨌든 간호사분들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내손으로 탯줄을 끊었다.

 

아이의 출산 전까지 병원 내 촬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출산 이후 병원 관계자의 배려에 따라 아이와 사진 촬영을 허락받았다. 아림이는 내가 상상했던 갓 태어난 아이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쭈굴쭈굴하고 못난이 모습을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뽀송뽀송하고 너무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림이와 우리는 첫 만남을 기록했다.

아림이와의 첫 사진

이제 아내의 자궁에 남아있는 탯줄과 태반을 빼내면 끝인데 이게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몇 차례 시도하다가 결국 의사는 수술을 제안했다. 큰 수술은 아니었으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고 나도 아내 옆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귀가 하기로 했다. 귀가하던 중 꺼놨던 휴대폰을 켜니 회사 CEO(Wilson)에게서 연락 달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전화를 걸어 출산 중이어서 전화를 못 받았다고 하니 축하한다며 일 얘기는 나중에 하자며 배려해 주었다. 그 후 출산 소식을 전달받은 CTO(Simon)에게 연락이 와 축하한다며 홍콩의 육아휴직(Paternity Leave)이 법적으로는 5일이지만 기간에 신경 쓰지 말고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휴가를 쓰라며 배려해 줬다. 고마운 일이었다.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이라면 아내와 아림이를 위해서는 회사의 배려를 충분히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한 후 아내의 수술이 잘 마무리 되었고 아내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날들 중 하나였던 오늘은 배려심과 고마움이 넘쳐나는 행복한 하루였다. 많이 부족한 한 사람으로서 과분한 행운을 받은 것 같아서 감사하기도, 여러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앞으로 고마운 사람들과, 특히 아림이를 위해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빨리 아림이를 다시 만나고 싶다.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림이를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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